그 순간
한 남자가 사하라 사막에서 목말라 죽어가고 있다. 그가 탄 비행기는 모래 위에 부서진 채 누워 있고, 뒤틀린 금속은 용서 없는 태양 아래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그에게는 기껏해야 일주일 정도 버틸 물이 있을 뿐이다. 구조대는 오지 않을 것이다. 사방 수천 마일로 뻗어나가는 절대적인 침묵만이 흐른다.
그때, 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부탁인데, 양 한 마리만 그려줘.”
말을 건넨 소년은 조종사의 무릎에도 채 닿지 않을 만큼 작다. 소년은 금발 머리에, 존재하지도 않는 바람에 나부끼는 스카프를 두르고 있다. 소년은 여기가 어디인지, 어떻게 왔는지 묻지 않는다. 비행기 잔해도, 그 어디로도 갈 수 없는 막막한 거리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마치 대답을 들을 줄 안다는 듯한 확신을 갖고, 양을 그려달라고 부탁할 뿐이다.
조종사는 거절해야 마땅했다. 그는 엔진과 남은 물, 그리고 이 모래 위에서 홀로 죽지 않는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대신 그림을 그린다. 첫 번째 양은 너무 병약해 보였다. 두 번째는 너무 늙었다. 세 번째는 뿔이 달렸다. 그건 숫양이지, 양이 아니었다. 그의 모든 시도는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이 이상한 아이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마침내 지치고 짜증이 난 조종사는 상자에 구멍 세 개를 쓱쓱 그린다. “네가 그려달라고 한 양은 이 안에 있어.” 그가 말한다.
어린 왕자의 얼굴이 기쁨으로 환해진다. “내가 원했던 게 바로 이거야!”
바로 여기, 이 순간, 무언가가 바뀐다. 어른들이 모자밖에 보지 못한다는 이유로 어릴 적 코끼리 그리기를 그만두었던 한 남자. 바로 그 남자가 방금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낸 것이다. 그리고 집 한 채만 한 소행성에서 온 한 소년은, 가장 진짜인 것들은 종종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에게 일깨워주었다.
성찰
우리는 평생에 걸쳐 우리 눈앞에 있는 것을 보는 법을 배운다. 코끼리가 아닌 모자를. 양이 아닌 상자를. 우리가 직업을 갖고, 책임을 다하고, 브리지와 골프와 정치의 세계에 통합되도록 해주는 현실적인 해석 말이다. 그런 교육을 받는 과정 어딘가에서, 우리는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작은 행성에 두고 온 장미. 우리가 그리기를 멈춘 코끼리. 귀 기울이는 법만 기억한다면 별들 속에서 들을 수 있을 웃음소리. 그것들은 우리가 그 주위에 그려놓은 상자 안에서, 양처럼 인내하며, 물처럼 본질적인 존재로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지혜란 무엇이 진짜인지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진짜인 것이 결코 눈에 보이는 것만은 아니었음을 기억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신뢰는 아침 햇살처럼 서서히 쌓인다는 것을. 사랑은 우리를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변화시킨다는 것을. 그리고 때로는, 우리가 위기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 누군가 양을 그려달라고 부탁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일은 연필을 집어 드는 것임을 기억하는 것이다.
사막은 여전히 광활하다. 비행기는 여전히 부서져 있다. 하지만 이제 모래 위에는 한 명이 아닌 두 사람이 있고, 그중 한 명은 상자 너머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