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갑옷처럼 정체성을 쌓아 올린다. 불충분하거나 잊힐 존재로 보이지 않도록 지켜주리라 믿는 역할들. 그러다 어느 날, 우리 자신의 삶 바깥에 갇힌 채 세상이 사진을 찍어대는 동안 은유적인 속옷 차림으로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타임스퀘어를 가로지르며
『버드맨』에는 리건 톰슨이 속옷 차림으로 타임스퀘어를 걷는 순간이 있다. 공연 도중 극장 밖에 갇혀버린 그는, 속옷 한 장과 절박함만을 걸친 채 네온사인으로 혼란스러운 거리를 헤쳐나가야 한다. 관광객들은 걸음을 멈추고 빤히 쳐다본다. 휴대폰이 별자리처럼 떠올라 그의 굴욕을 담아낸다.
하지만 그 노출의 순간, 무언가 다른 일이 일어난다. 리건은 더 이상 연기하지 않는다. 한때 입었던 망토 뒤에도, 되고자 했던 진지한 예술가라는 허울 뒤에도 숨을 수 없다. 위엄과 통제력을 모두 벗어던진 완전한 노출의 순간, 그는 지난 몇 년 중 가장 생생하게 살아있다. 버드맨의 목소리가 여전히 조롱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보다 더 큰 무언가와 경쟁해야 한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의 맥박과.
가면이 벗겨졌을 때
어쩌면 재탄생이란 새로운 자아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자아도 없는 상태의 노출을 견뎌내는 것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리건은 자신을 규정했던 슈퍼히어로 시리즈를 넘어서도 중요한 존재라는 증거를 원했다. 하지만 그가 얻은 것은 다른 무언가였다. 자신의 굴욕 속에서, 어색한 인간성 속에서 스스로가 중요해지는 경험. 누군가의 잣대로 인상적이거나 가치 있어서가 아니라, 부정할 수 없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모든 연기 아래에서 닿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올바른 가면을 선택했음을 확인시켜주는 박수갈채가 아니라, 가면이 완전히 벗겨졌을 때 우리가 여전히 여기에 있음을 발견하는 그 드문 순간들. 여전히 숨 쉬고, 여전히 우스꽝스럽고 불확실하며, 왠지 모르게 이대로 충분하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