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여름에도 대리석은 차갑다. 가까이 다가서면 돌이 살아 숨을 참기라도 하는 듯, 그 기묘한 생명체의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17피트 높이의 카라라산 백색 대리석. 스물여섯의 젊은이가 조각한 이 작품은, 이미 다른 두 명의 조각가가 불가능하다며 포기했던 돌덩이로 만들어졌다. 너무 좁고, 너무 얕으며, 결함투성이였다. 그 돌은 수십 년간 대성당 작업실에 방치되어 있었다. 다른 이들의 포기를 기념하는 기념비처럼. 그리고 그 젊은 조각가는 그 돌을 보며, 그 안에 무언가 기다리고 있음을 보았다.
다비드상을 오랫동안 바라보면, 하나의 모순이 드러난다. 그 몸은 불가능할 정도의 평온함을 보여준다. 모든 근육은 의학적으로 정밀하게 묘사되었고, 상체는 세상의 모든 시간을 가진 사람처럼 무심한 우아함으로 돌아가 있다. 하지만 눈은 크게 뜨여,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고정되어 있다. 미간은 찌푸려져 있다. 기괴할 정도로 거대한 오른손은, 그 위로 보이는 모든 이완된 선들을 배반하는 힘으로 무언가를 꽉 쥐고 있다. 목의 힘줄은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체중은 뒷발로 옮겨져 있다. 휴식이 아니라 웅크림의 자세다. 몸은 격렬하고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고 있다. 거인은 아직 서 있다. 돌은 아직 무릿매를 떠나지 않았다. 미켈란젤로는 승리자를 조각하지 않았다. 그는 승리가 가능해지거나, 혹은 불가능해지기 직전의, 그리고 아직 누구도 그 결과를 알지 못하는 그 견딜 수 없는 찰나를 조각했다.
이것은 승리가 아니다. 이것은 그 직전의 숨결이다.
우리는 이 순간을 온몸으로 알고 있다. 비록 좀처럼 입에 올리지는 않지만. 수백 번 되뇌었던 대화를 앞둔 아침. 커피잔을 든 흔들림 없는 손. 평소와 다름없는 정확함으로 잠근 셔츠 단추. 누가 보더라도 평온 그 자체일 것이다. 하지만 내면에서는 피가 소용돌이치고, 모든 세포는 다가오는 단 하나의 지점을 향해 있다. 우리의 겉은 대리석이요, 속은 불이다.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용감한 모습은 평온함이다. 거대한 시련 앞에서의 평온함이란 언제나 의지를 대신해 몸이 하는 거짓말이기 때문이다.미켈란젤로는 영웅적인 것과 평범한 것이 실은 같은 자세임을, 아주 급진적인 제안을 한 셈이다. 똑같이 연약한 무기를 움켜쥔, 똑같이 거대한 손. 똑같이 다가오는 거대한 존재를 응시하는, 똑같이 커다란 두 눈. 법정으로 들어서는 젊은 여성. 안락한 통념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발표하는 과학자. 병원 침대 곁에서, 내면의 모든 것이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도, 차분한 목소리와 평온한 얼굴을 유지하는 부모.
오늘 밤 어딘가, 당신이 결코 볼 수 없을 어떤 방에서, 누군가 뒷발에 무게를 싣고 서서, 의식적으로 천천히 숨을 쉬고 있다. 그 모습은 영웅적이지 않다. 그저 평범해 보인다. 대리석은 차갑다. 손은 무언가를 꽉 쥔다. 돌은 아직 무릿매를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