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잘못 볼 용기
영감

사람을 잘못 볼 용기

3분 소요

그녀는 편지 한 통과 함께 홀로 있다.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그런 종류의 편지가 아니다. 그녀가 경멸하는 남자에게서 온, 그녀가 이미 완벽히 안다고 단정해버린 사람의 손글씨로 쓰인 편지다. 엘리자베스 베넷은 그 편지를 들고 앉아 있다. 잔뜩 날을 세운 채, 경멸의 주석을 달 준비를 마치고 한 번 읽어 내린다. 그러다 그녀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다. 편지는 논쟁하지 않는다. 그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말해줄 뿐이다. 아첨도 호소도 없이, 조용히 일련의 사건들을 펼쳐 보이는데, 그 내용은 그녀가 몇 달 동안 마치 자연의 이치인 양 품고 살아온 이야기와는 들어맞지 않는다.

그녀는 다시 읽는다.

그리고 또다시.

그녀를 둘러싼 방, 가구와 빛, 평범한 영국의 오후는 변함없이 그대로다. 하지만 그 풍경 속 무언가가 변했다. 그림자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어떤 형체였음을 마침내 알아차렸을 때 그림이 달라 보이는 것처럼. 그녀는 그토록 확신에 차 있었다. 그녀의 확신은 어리석은 자의 뭉툭한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영리한 자의 잘 벼려진 날카로운 도구였고, 바로 그 때문에 그토록 깔끔하게 엉뚱한 방향을 베어버린 것이었다. 인식으로 위장한 오만. 통찰을 연기하는 자신감.

“이 순간까지,” 그녀는 훗날 말하게 되리라. “나는 나 자신을 전혀 알지 못했구나.”

그녀는 편지가 드러내는 진실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다. 바로 그 점이 비범하다. 편지를 덮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의 말투에서 작은 흠을 찾아내 그것을 빌미로 전부를 무시해버릴 수도 있었다. 대신 그녀는 그 불편함 속에 머무른다. 빗속에 너무 오래 방치된 종이처럼, 자신이 쌓아온 이야기가 손안에서 허물어지도록 내버려 둔 채.


우리 대부분에게는 그렇게 서랍 속에 넣어두고 잊어버린 사람이 있다. 동료이거나, 이웃이거나, 몇 년 전 어느 모임에서 무언가 거슬리는 말을 했던 사람. 우리는 조용히, 그리고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그 사건을 종결지어 버렸다. 그 판결은 마땅한 것처럼 느껴졌다. 명쾌함처럼 느껴졌다.

엘리자베스가 발견한 것은 한 남자에 대해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그녀는 더 깊은 것을 발견한다. 바로 그녀가 가장 신뢰했던 자질인 자신의 지성이, 스스로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상처 입은 자존심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이미 내려놓은 결론을 위해 증거를 수집해왔던 것이다. 판단이 먼저였다. 사실들은 그 후에 그 주위를 감싸며 배열되었다.

가장 위험한 확신이란, 그저 명료하게 보고 있다는 느낌과 구분되지 않는 확신이다.

1813년에 글을 쓴 오스틴은 악당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관심 있었던 것은 바로 이것, 우리가 현실로 착각하는 이야기가 가하는 평범하고도 내적인 손상이었다.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쌓아 올린 범주들이, 정작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밀어내는 벽이 되어버리는 것.

만약 당신이 그 편지를 다시 집어 든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그 내용에 동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당신 자신의 경험을 저버리기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그 결말을 이미 알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천천히, 그리고 정직하게 읽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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