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움직임을 멈췄다. 이것이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점이다. 등반은 끝났고, 힘은 다 소진되었으며, 이제 남은 것은 이것뿐이다. 들쭉날쭉한 바위 위에 한쪽 부츠가 다른 쪽보다 더 높이 딛고 서 있고, 지팡이는 마치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잊은 듯 느슨하게 잡혀 있으며, 우리가 느낄 수 없는 바람이 완전히 가만히 멈춰 선 몸에 검은 프록코트를 밀착시키고 있다. 그의 적갈색 머리카락이 돌풍을 맞고 있다. 그에 관한 그 밖의 모든 것은 지친 몸만이, 혹은 경외심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방식으로 차분하고, 침착하며, 고요하다.
그리고 안개. 어둠도, 벽도, 산을 오르게 했던 그 의지로 뚫고 나갈 수 있는 장애물도 아니다. 그저 창백하고 거대한 안개일 뿐, 아래 계곡을 삼키고, 멀리 있는 봉우리들을 희미한 윤곽으로 흐릿하게 만든다. 앞의 세상은 형태를 잃었다. 그 깊이는 얕을 수도, 끝이 없을 수도 있다. 그 형상은 빛에 따라 변한다. 보이는 길도, 다음 발 디딜 곳도, 그를 이곳까지 이끌어 온 노력의 논리적 연장선도 없다. 그는 알려진 세상이 사라지는 바로 그 지점에 도달했고,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없다. 앞으로도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그의 뒷모습뿐이며, 2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 뒷모습은 인생의 전환점에 선 한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담아낸 가장 솔직한 이미지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우리는 일생 동안 되돌아가는 자세가 하나 있는데, 비록 그것을 거의 이름 붙이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을 내린 다음 날 아침에 그 자세를 안다. 우리는 사랑했던 누군가가 머물렀던 방의 문턱에서 그 자세를 안다. 우리는 새로운 무언가의 첫날, 앞으로 닥칠 일의 윤곽이 아직 대부분 공허할 때 그 자세를 안다.
우리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용기와 공포를 모두 직시해야 한다. 프리드리히는 이러한 순간들이 해결해야 할 위기나 서둘러 넘어야 할 문턱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했다. 그것들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며 지니고 있는 ‘나’에 비해 세상이 실제로 얼마나 광활한지를 마주하는, 진실되고 결코 축소될 수 없는 만남이다. 방랑자는 깃발을 꽂지 않는다. 그는 뒤로 물러서지도 않는다. 그는 코트를 몸에 꽉 붙이고, 지팡이를 손에 느슨하게 쥔 채 서서 바라본다.
안개는 그의 적이 아니다. 그저 알 수 없는 존재일 뿐이다. 그리고 안개 앞에서 가만히 서 있는 그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만 끊임없이 상기해야만 하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정상이란 그 무엇의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곳은 노력이 더 고요한 무언가로 이어지는 곳이며, 남은 일은 그곳에 머물며 바라보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