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앤디 듀프레인은 교도소장실 문을 잠그고 음반을 찾아낸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그는 마치 성물을 다루듯 부드럽게 바늘을 내려놓고, 방송 장비로 걸어간다. 그의 손이 스위치 위에서 잠시 멈춘다. 망설임 때문이 아니라, 그가 이제 곧 나누어 줄 것의 무게 때문이었다.
음악이 콘크리트 마당 위로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이탈리아어로 노래하는 두 소프라노의 목소리는, 밝고 비현실적이며 그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사내들은 하던 말도, 떼던 걸음도, 쉬던 숨도 멈춘다. 굳어 있던 얼굴들이 위를 향한다. 이들은 아름다움의 소리를 잊은 남자들이며, 가질 수 없는 것은 원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단련시킨 이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며, 스스로가 굶주리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무언가를 건네는 이 음표의 폭포가 쏟아진다.
레드도 그들 사이에 서 있다. 훗날 그는 그 몇 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려 애쓸 것이다. 그 이탈리아 여인들이 무엇에 대해 노래하는지 전혀 몰랐다고, 그는 말할 것이다.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 몇 분 동안, 쇼생크의 모든 사내들이 자유를 느꼈다는 사실이었다.
앤디는 이 반항의 대가가 무엇일지 알면서도, 그 사무실에 홀로 앉아 있다. 2주간의 독방 감금. 하지만 그는 미소 짓는다. 감옥 벽이 가둘 수 없는 무언가를 온 교도소에 상기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잿빛 세상 너머의 기억을, 아름다움이 여전히 존재하며 그들 안의 무언가가 여전히 그것에 반응한다는 약속을 들려준 것이다.
교도관들이 이미 오고 있다. 계단을 오르는 그들의 군화 소리가 들린다.
성찰
우리 역시 우리 자신의 감옥을 지니고 다닌다. 우리를 무감각하게 만드는 단조로움, 우리를 위축시키는 시스템, 변화도 자비도 없이 앞으로만 뻗어 나가는 듯한 세월이라는 감옥을. 그리고 그런 곳에서 우리는 여전히 이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바로 우리 마음속 극장에서 무엇을 상영할지 선택할 능력 말이다.
앤디의 반항은 탈출이 아니었다. 아직은 아니었다. 그것은 더 조용하고, 더 본질적인 무언가였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세계는 오롯이 자신만의 것이며, 어떤 제도도 그의 영혼을 뒤흔드는 것을 법으로 정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작은 반항들이 으레 그렇듯, 그 음악은 그에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벽이 결코 반증할 수 없는 무언가를 증명해냈다.
당신만의 잿빛 마당 어딘가에도, 기다리는 순간이 있다. 거창하거나 극적이지 않은 순간. 그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아름다운 것을 가꾸고, 세상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자신의 일부를 먹여 살리는 선택의 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트는 것.
교도관들은 언제나 올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이것이 있다. 노래, 그 노래를 듣는 이들의 얼굴에 깃든 빛, 모든 것을 빼앗기 위해 만들어진 곳에서도 당신이 여전히 선물을 건넬 수 있다는 깨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