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가 아는 것
영감

미소가 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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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당신은 그녀의 얼굴을 수천 번도 더 보았을 것이다. 엽서에서, 커피 머그잔에서, 그녀를 농담거리로 전락시키는 패러디 속에서. 하지만 이제 당신은 살 데 제타(Salle des États)에 서 있다. 빼곡히 치켜든 스마트폰의 숲을 헤치고 나아가면, 문득 방탄유리 너머의 그녀와 마주하게 된다. 그녀는 신화보다 훨씬 작다. 세로 서른 인치에 가로 스물한 인치. 잠든 아이를 안듯, 한 여인이 두 팔로 감쌀 수 있을 정도다.

미술관의 소음이 아득해진다. 셀카봉을 든 관광객들은 시야의 주변부로 흐려진다. 당신은 문득 그녀의 얼굴을 탐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마치 사랑하는 이가 방금 내뱉은 알쏭달쏭한 말을 헤아리려 그 얼굴을 뜯어보듯 말이다. 그녀의 입꼬리는 위로 향해 있는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하다. 그녀의 눈은 바라볼수록 시시각각 변하는 듯한 표정으로 당신의 눈을 붙잡는다. 즐거워하는 걸까? 우수에 젖은 걸까? 비밀을 감추는 걸까? 아니면, 비밀을 나누고 있는 걸까?

레오나르도는 뚜렷한 윤곽선을 사용하지 않고, 연기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한 스푸마토 기법을 통해 빛과 그림자가 서로 스며들게 했다. 마치 안개 속에서 얼굴이 나타나듯, 그녀의 이목구비는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결코 선명하지도, 온전히 붙잡히지도 않은 채. 그녀의 입술을 빤히 쳐다보면 평평해지는 듯하다가도, 시선을 돌려 곁눈으로 슬쩍 보면 더 환하게 미소 짓는 것 같다.

바로 이 지점이 당신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그녀의 명성도, 역사도 아니다. 영원히 알 듯 말 듯한 상태로 존재하는 그 특성 때문이다. 그녀는 표현과 의미 사이의 공간에 존재하며, 우리 안의 무언가는 그 공간을 알아본다. 우리 또한 그곳에 살고 있으므로.


성찰

누군가 당신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솔직한 대답에는 몇 시간이 걸릴 것이기에 정직하게 답할 수 없었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려보라. 진실이란 여러 겹으로 깊고, 모순적이며, 단순한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기억과 희망, 두려움과 뒤엉켜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괜찮아” 혹은 “피곤해” 혹은 “응”이라고 말했고, 그 단어는 당신과 그 사람 사이에 닫힌 문처럼 놓여 있었다.

신비로움은 초상화의 결점이 아니다. 신비로움이야말로 그 초상화의 가장 깊은 진실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그 누구에게서든, 신비로움이야말로 가장 진실된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당신이 보았던 어머니의 얼굴을 생각해보라. 어떻게 그 얼굴 하나에 안전함과 경고, 지친 기색과 다정함이 동시에 담길 수 있었는지를. 어려운 질문에 답하기 전 친구의 그 짧은 침묵을 생각해보라. 차마 말하지 못하는 모든 것으로 가득했던 그 정적을.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아침, 거울 속에 비친 당신 자신의 얼굴을 생각해보라.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며 평생을 보내고, 그 노력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이것은 실패가 아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들 사이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본질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부분적으로 우리에게 가려져 있을 것이다. 우리 자신의 마음 또한 아직 탐험하지 못한 구석을 언제나 품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알 수 없음은 관계의 장벽이 아니라, 바로 그 관계의 결 그 자체이다.

그녀는 오백 년 동안 미소 짓고 있다. 그 미소에 화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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