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 소년이 바르셀로나의 한 중고 악보 가게를 둘러보고 있다. 때는 1890년. 가게에서는 이런 곳 특유의 냄새가 났다. 가장자리가 해어지기 시작하는 종이 냄새, 가구의 일부가 될 만큼 오래도록 소복이 쌓인 먼지 냄새가. 소년의 이름은 파블로 카잘스. 그는 무언가 특별한 것을 찾고 있지는 않았다. 중요한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그의 손이 한 묶음의 악보를 집어 든다. 바흐의 첼로 모음곡. 악보는 겉보기엔 평범했다. 150년간 수많은 연주자들이 만지고, 훑어보고, 옆으로 치워두었던 음표들의 나열일 뿐. 그보다 먼저 이 악보를 마주했던 모든 이들은 똑같은 것을 보았다. 바로 연습곡, 기교 훈련, ‘진짜’ 음악으로 넘어가기 전에 활 쓰는 법을 가다듬어야 할 학생들을 위한 교재를.
카잘스는 악보를 집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대중 앞에서 연주하기까지 12년 동안 매일같이 그 악보로 연습했다. 다른 모두가 준비 과정이라며 무시했던 것에 12년을 쏟아부은 것이다. 현 위를 가로지르는 활의 움직임 속 어딘가에서, 다른 누구도 애써 귀 기울이지 않았던 무언가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연습곡 모음이 아니었다. 하나의 대성당이었다. 프렐류드의 아르페지오 음들은 아치형 천장처럼 솟아올랐다. 사라방드는 슬픔의 속도로 움직였고, 너무나도 적나라해서 음 하나하나가 진실을 말할 때의 그 여린 떨림으로 진동했다. 여섯 개의 악장, 여섯 개의 뚜렷이 구분된 방들. 그리고 직접 가리킬 수는 없고 오직 느낄 수만 있는 무언가가 그들을 하나로 묶고 있었다.
다른 모두가 부분만을 볼 때, 그는 전체를 들었다.
악보는 변하지 않았다. 200년 동안 수많은 연주자들이 똑같은 악보를 손에 들고 충실한 지침을 들을 때, 카잘스는 살아있는 생명체를 들었다. 차이는 음표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그 곡들이 이미 자기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에 속한 것처럼 기꺼이 귀 기울이려는 의지에 있었다.
우리 대부분은 저 연주자들이 바흐의 악보를 대했던 방식 그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능숙하게, 실용적으로, 각 부분을 따로 떼어 다루고는 다음 부분이 시작되기 전에 옆으로 치워버린다. 힘들었던 어느 달. 예상치 못한 친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했던 여러 해. 우리는 각 조각을 그 자체만으로 평가하고, 그렇게 볼 때 삶의 많은 부분은 아직 오지 않은 무언가를 위한 준비 과정처럼 보인다.
그 모음곡은 언제나 걸작이었다. 단지 그것을 걸작으로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다.어딘가에서, 당신 삶의 파편들은 이미 하나의 배열을 이루고 있다. 당신의 생각을 바꿔놓은 대화. 다른 무언가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준 상실. 당신이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모든 것이 자라난 토양이 되어준 길고 평범한 시간. 타일 한 장에는 전체 그림이 담겨있지 않다. 하지만 충분히 뒤로 물러나, 마지막 음이 끝난 뒤의 침묵을 충분히 머금고 있으면, 전체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곡선을 이루며 울림을 지닌 채, 무엇 하나 허비되지 않고, 외로움과 기쁨이 바로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놓여 있는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