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낡은 골동품 가게 위층의 한 방, 펜이 종이를 사각이며 스친다. 윈스턴 스미스는 텔레스크린에 등을 돌린 채 책상에 앉아, 자신을 파멸로 이끌 단어들을 엮어낸다. 때 묻은 창문 너머로, 오후의 햇살 속에 먼지들이 떠다닌다. 그 하나하나의 입자는 당이 역사를 새로 쓰기 전 세상의 파편과도 같다. 밖에서는 한 프롤 여인이 빨랫줄에 빨래를 널며 기계가 만들어낸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국가가 부여했지만, 정작 자신은 그것이 인공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텅 빈 일기장 페이지가 그를 고발하듯 올려다본다. 쓴다는 것은 기억하는 것이다. 기억하는 것은 사상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써 내려간다. 그가 쓴 단어들은 마치 자신의 재판에 제출된 증거처럼 나타난다. ‘1984년 4월 4일.’ 그는 벌써 진리성이 훗날 지워버릴지도 모르는 날짜 하나를 보존했으며, 당이 통제한다고 주장하는 시간의 한순간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 셈이다.
빅토리 진이 목구멍을 태운다. 텔레스크린에서는 초콜릿 배급량이 인상되었다고 발표했지만, 실은 30그램에서 20그램으로 줄었다. 윈스턴은 이것이 거짓말임을 안다. 그는 30그램을 기억한다. 실재했던 것에 대한 그 완고한 고집, 공식적인 망각의 흐름에 맞서 과거를 붙드는 그 행위가, 그가 쓰는 어떤 글보다도 더 확실하게 그를 파멸로 낙인찍는다.
방 안에서는 먼지와 낡은 책 냄새, 그리고 너무 작아 붙잡을 수도 없는 입자로 갈려 나가는 한 문명의 냄새가 난다. 햇빛 속을 떠다니는 각 알갱이는 잊힌 사실이며, 지워진 사람이며, 그 안에 담긴 사상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사전에서 정화된 단어다. 그는 그 입자들이 떠다니는 것을 보며 자신 또한 그들 중 하나가 되리라는 것을 안다. 아무도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빛 속의 먼지 한 톨이 되리라는 것을.
성찰
가장 교활한 감옥은, 우리가 더 이상 떠날 수 없음을 깨닫지 못할 때까지, 스스로의 안락함으로 벽돌 한 장씩 쌓아 올린 바로 그 감옥이다.우리는 윈스턴 스미스가 아니다. 기억 때문에 증발될 위험에 처해 있지도 않다. 그러나 오웰의 천재성은 텔레스크린을 예측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쉽게 기억하는 습관을 포기하는지를 꿰뚫어 본 데 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이 큐레이션한 피드를 스크롤한다. 우리는 잠시 후에 반박되는 말을 듣고도, 이전의 말을 잊은 채 적응하고 순응한다. 어떤 부처가 우리에게 강요해서가 아니라, 기억하는 것, 즉 우리가 듣는 말의 흐름에 맞서 우리가 아는 것을 붙들고 있는 행위가 우리를 소진시키기 때문이다.
먼지 가득한 그 방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고도 끔찍하다. 당신이 목숨을 바쳐 지킬 마지막 진실은 무엇인가? 우리는 스스로를 저항의 영웅으로 상상하지만, 어쩌면 핵심은 더 작고 일상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고, 모르는 편이 더 쉬울 때조차 그것을 외면하기를 거부하는, 화려하지 않은 규율. 모호함이 보상받는 시대에 명료하게 말하는 것. 우리가 인지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며, 자신의 눈을 믿는 것.
먼지는 여전히 떠다닌다. 어딘가, 우리 마음속 빌린 공간에서, 우리는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며 계속 일기를 써 내려간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작은 사상죄들을 저지르면서. 프롤 여인은 여전히 노래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방에서 조용히 자문해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어떤 기억이 우리 자신의 것인지 알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