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 이들
영감

잠 못 이루는 이들

3분 소요

그 순간

도시가 숨을 고르는 시간, 소음이 물러가고 그 아래 다른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는 때. 길모퉁이 식당 하나가 환하게 빛난다. 그 불빛은 어둠에 맞서 거의 폭력적일 만큼 강렬하다. 그림자를 지우고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바로 그 특유의 형광빛 도는 황록색 불빛. 안에는 네 명의 인물이 서로 잘 맞지 않는 퍼즐 조각처럼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카운터에 앉은 한 쌍의 남녀. 소매가 거의 닿을 만큼 가까이 있지만, 둘 사이의 거리는 대륙이라도 가로지를 듯 멀다.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우리가 볼 수 없는 무언가를 내려다본다. 옆의 남자는 정면을 응시한 채, 평면적인 불빛에 얼굴이 붙들려 있다. 그들을 이곳으로 이끈 대화가 무엇이었든, 이미 오래전에 소진되었다. 그들은 기차 안의 이방인들처럼 함께 있을 뿐이다. 공간을 공유하고, 시간을 공유하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는다.

그들 맞은편에는 또 다른 남자가 컵 위로 등을 구부리고 있다. 우리에게 등을 보인 그의 고독은 너무도 완전하여 바깥으로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흰 옷을 입은 점원은 이 기나긴 새벽을 기다리는 법을 배운 사람, 한밤중에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대화가 아니라 그저 깃들일 곳임을 이해하는 사람의 자세로 끈기 있게 멈춰 서 있다.

그리고 유리창. 건물 모퉁이를 따라 끊어짐 없이 이어진 한 장의 통유리는 모든 것을 보여주고,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다. 보이는 문은 없다. 이 대목에서 숨이 턱 막힌다. 안의 사람들은 환한 상자 안에 담긴 동시에 노출되어 있다. 바깥 도시가 어둡고 고요하게 잠드는 동안에도. 길 건너 건물들은 텅 빈 창문만을 보여준다. 보도블록은 비어 있다. 그들은 함께 홀로 있으며, 우리는 투명하고 절대적인 무언가에 의해 분리된 채 밖에서 안을 들여다본다.


그 성찰

우리가 이 장소를 알아보는 것은 그리니치 빌리지의 그 모퉁이에 서 본 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 각자의 방식으로 그곳에 머물러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잠들었어야 할 시간에 형광등 불빛 아래 앉아, 잠시 멈춰버린 그 순간 세상에 남은 유일한 사람들처럼 느껴지는 낯선 이들에게 둘러싸여 본 적이 있다.

이 그림이 우리 곁에 머무는 이유는 우리가 느끼지만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무언가에 이름을 붙여주기 때문이다. 가까이 있다는 것이 곧 친밀함은 아니라는 것, 도시는 우리를 한데 모으는 동시에 고립시킨다는 것, 공간을 공유하면서도 진정으로 만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밤을 지새우는 이들은 꼭 고통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머무를 장소를, 그 아래 앉을 불빛을 찾아냈다. 그들은 이 시간까지 버텨낸 것이다.

어쩌면 호퍼가 주는 것은 위로가 아니라 인정일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 감추기보다 있는 그대로 인정받는 고독을 마주하는, 그 조용한 정직함. 우리 사이의 유리는 실재한다. 때때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각자의 편에 앉아, 커피 잔을 들고, 다른 이들도 그들 편에 앉아 있음을 아는 것이다. 때로는 함께 홀로 있는 것만으로도 아침이 올 때까지 우리를 지탱해 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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