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살인은 불과 몇 페이지에 걸쳐 일어난다. 라스콜니코프는 마음속으로 살인을 예행연습했고, 비범한 인간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구축했으며, 관습적인 도덕률 위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는 심장을 쿵쾅거리며, 외투 아래 도끼를 숨긴 채 노파의 아파트로 향하는 계단을 오른다. 노파가 문을 연다. 뒤따르는 것은 초인의 냉철하고 이성적인 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공황과 폭력, 그리고 혼돈이다.
그는 노파를 내리친다. 그리고 다시 내리친다. 죄 없는 그녀의 여동생이 하필 그때 나타나고, 그는 그녀마저 죽인다. 그는 손을 떨며 서랍을 뒤적이지만, 값나가는 것은 거의 챙기지 못한다. 순전히 운으로 탈출하며, 계단에서 이웃과 마주칠 뻔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작은 방으로 돌아온다. 진짜 형벌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는 열에 들떠 누워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그의 정신은 산산이 조각난다. 그는 유령처럼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를 헤매고, 낯선 이들에게 반쯤 고해하며, 기이한 행동으로 의심을 산다. 아무런 짐 없이 당당히 나아갔어야 할 비범한 인간은 이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한다. 알고 보니, 그의 양심은 그의 특별 지위에 대한 공지를 전달받지 못한 모양이다. 그의 이론은 우아하고, 빈틈없었으며, 그 논리는 완벽했다. 하지만 몸은 정신이 법으로 정해 외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대가를 기억하는 법이다. 그를 짓누르는 것은 경찰도, 증거도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저지른 일이라는 단순하고도 끔찍한 사실, 그리고 스스로 되뇌었던 자신의 모습과 실제 자신의 모습 사이에 놓인 거대한 심연이다.
성찰
우리는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론을, 우리의 특정한 일탈이 왜 규칙의 예외가 되는지에 대한 정교한 합리화를 구축할 것이다. 누군가 그럴 만했다는 이유로 우리가 내뱉는 날카로운 잔인함. 스트레스가 심해서, 제도가 불공평해서, 이번만은 정말 경우가 달라서 우리가 건너뛰는 원칙들.
도스토옙스키가 이해했던 것, 그의 통찰이 우리를 그토록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타인에게 하는 거짓말은 견뎌낼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은 우리를 안에서부터 무너뜨린다. 우리는 세상이 우리를 악인이라 생각해도 계속 걸어갈 수 있다. 그러나 진실을 알면서 우리 자신의 영웅적 면모를 주장하면서는 온전한 자신으로 남을 수 없다.
우리 각자의 내면 어딘가에서, 평범한 규칙들이 왜 우리 쪽으로 살짝 휘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이론을 구축하는 목소리가 있다. 문제는 타인에게 발각되느냐가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아는 바를 끌어안고 그 비좁은 방 안에 살면서, 나날이 더 높고 위태롭게 논리의 탑을 쌓아 올리며, 마침내 열병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스스로에게 발각되지 않은 그 상태를 과연 우리가 견딜 수 있느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