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함 속에서 피어난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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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함 속에서 피어난 왕국

3분 소요

그녀는 포도 한 알을 훔친다.

그게 전부다. 자신의 맥박 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한 방, 연회상 위에서 집어든 포도 한 알. 창백한 남자는 먼 끝자리에 미동도 없이 앉아 있다. 그의 피부는 더는 누구도 쓰지 않는 가구에 씌운 천처럼 뼈대 위에 걸쳐져 있다. 그의 얼굴은 폐허와 같다. 눈은 없고, 한때 눈이 있었을 법한 흔적만 희미할 뿐이다. 그리고 손바닥에는 두 개의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그는 곧 그 구멍을 통해 세상을 완벽하게 보게 될 것이다. 상 위에 차려진 음식은 그 풍요로움이 거의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구운 고기, 산더미처럼 쌓인 과일, 수 세기를 기다려온 존재처럼 끈기 있게 타오르는 촛불들. 팻말이 그녀에게 경고한다. 파우누스도 경고했다. 방의 건축 양식에 깃든 모든 본능이 그녀에게 경고한다.

그럼에도 오필리아는 손을 뻗는다.

그녀는 열한 살이다. 그녀는 침묵을 무기처럼, 시계를 종교처럼 여기는 남자가 지배하는 집에서 산다. 그녀는 어른들이 구사할 수 있는 온갖 언어로 들어왔다. 너는 보이지 않는 존재이며, 너의 상상력은 부끄러운 것이고, 유일하게 중요한 이야기는 네가 온전히 머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저녁 식탁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뿐이라고. 그리고 이곳, 이 끔찍한 지하의 방에서,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본다. 그래서 그것을 집는다.

창백한 남자의 고개가 기울어진다. 그의 손이 천천히 얼굴로 올라간다. 그는 눈 없는 눈구멍에 손바닥을 눌러 대고, 그의 내면에 깃든 어둠은 방향을 찾는다.

뒤따르는 것은 순전한, 비명으로 가득 찬 결과뿐이다. 하지만 오필리아는 달린다.


우리는 삶의 너무나 많은 시간을 손을 뻗지 않으며 보낸다. 우리는 손을 뻗기 전에 대가를 계산하고, 대개 그 계산은 정확하다. 포도 한 알은 창백한 남자를 감수할 가치가 없다. 조심성은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다. 하지만 우리 안의 무언가는 알고 있다. 조심성이란 너무 오래 지속되면 그 자체로 일종의 소멸이 된다는 것을. 결코 손을 뻗지 않는 사람은 아주 고요하고, 아주 조용해지며, 마침내 그 고요함은 만족감으로 오인된다.

오필리아가 포도에 손을 뻗는 것은 무모해서가 아니다. 그녀가 손을 뻗는 이유는 너무나 오랫동안, 너무나 작은 존재로 억눌려왔기에, 무언가를 드러내놓고 원한다는 행위 자체가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진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하 왕국은 위험하다, 물론이다. 델 토로는 우리가 그 사실을 결코 잊지 않게 만든다. 하지만 그곳은 그녀의 욕망이 무게를 가지는 유일한 장소이며, 그녀의 선택이 주변 세상을 뒤바꾸는 곳이다.

어둠 속에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거짓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의 청사진이다.

우리 대부분은 창백한 남자나 대위의 권총과 마주할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무언가를 원하는 것을 금지하는 방의 느낌을 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욕망을 삼켜야 하는 계산법을 안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 삶의 어떤 작은 방 안에서, 우리는 그럼에도 포도를 향해 손을 뻗는다. 현명하지도, 안전하지도 않게, 그저 정직하게.

그리고 우리는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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