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 맞서 펼치는 게임
영감

어둠에 맞서 펼치는 게임

3분 소요

그 순간

어린 소년이 강제 수용소의 어둠 속, 쇠 상자 안에 웅크리고 있다. 손톱 밑은 때로 까맣고, 옷은 다 해졌지만, 그 눈은 경이로움으로 동그랗게 뜨여 있다. 밖에서는 나치 군인들이 아직 살아있는 사람을 찾아다닌다. 안에서 아이는 숨어있는 곳의 모서리를 꽉 붙잡고, 숨소리가 커지지 않도록 애쓴다. 아이는 두렵지 않다. 오히려 신이 났다. 아빠가 이건 게임의 일부라고, 조용히 잘 숨어있으면 진짜 탱크를 상품으로 받게 될 거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쇠 상자의 좁은 틈새로 군홧발들이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독일어로 짖어대는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아이는 이곳에서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 아빠가 알려준 규칙만을 알 뿐이다. 조용히 할 것. 꼭꼭 숨을 것. 우리는 이제 거의 다 이겼단다.

이 순간을 참을 수 없이 가슴 아프면서도 동시에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그 침묵의 깊이다. 그것은 텅 비어 있지 않다. 수용소에서 몇 달 동안 아버지가 아들의 상상력 속에 쏟아부은 모든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잔혹함에 대한 터무니없는 설명들, 우스꽝스러운 걸음걸이, 점수와 상품에 대해 과장되게 속삭이던 말들까지. 그 모든 것이 숨어있는 이 단 하나의 순간 속으로 응축된다. 소년의 얼굴에 공포가 깃들지 않은 것은, 아버지가 공포가 감히 발 들일 수 없는 세계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려, 온전히 사랑으로, 그러나 엉뚱함으로 위장한 요새를 지어 올린 것이다.

쇠 상자는 관이면서 동시에 요람이 된다. 우리는 아이와 함께, 가슴을 졸이며 그가 기다리는 것을 지켜본다. 아이는 자신이 이기고 있다고 믿는다.


성찰

이러한 충동을 알아차리기 위해 굳이 역사적 참극을 겪을 필요는 없다. 그것은 겁에 질린 아이를 안심시키려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는 모든 부모 안에, 사랑하는 사람을 걱정시키지 않으려 아픔 속에서도 미소 짓는 모든 사람 안에 살아 숨 쉰다. 상상력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다. 때로 그것은 현실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무언가로 바꾸는 유일한 도구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런 상상의 안식처를 지을 때, 우리는 진정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현실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것일까, 아니면 어둠이 결코 침범할 수 없는 더 깊은 진실을 보여주는 것일까? 로베르토 베니니의 영화 속 아버지는 아이 마음속의 작은 불꽃 하나를 지키기 위해, 창의력과 희망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불태우며 자신을 온전히 던졌다. 그의 희극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지어낸 모든 규칙, 과장된 몸짓,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는 오직 한 명의 작은 관객을 향해 있었다.

마지막에 탱크가 도착한다. 진짜로, 눈부시게 빛나며. 소년이 나타나 순수한 기쁨으로 외친다. “우리가 이겼어!” 아버지는 그 순간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선물은 남았다. 영화의 제목이 말하듯, 인생은 아름답다. 고통이 환상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위해 그렇게 만들어 줄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한 번에 하나의 엉뚱한 게임으로, 피할 수 없지만 그것이 우리를 규정하도록 내버려두길 거부하는 마지막을 향한, 우스꽝스러운 마지막 걸음으로 말이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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