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버스 정류장
영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버스 정류장

3분 소요

어느새 밤의 일부가 된 길 위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사츠키는 시골길 한편, 작은 나무 비가림막 아래 서 있다. 등에는 동생 메이가 업혀, 온 걱정을 언니에게 다 맡겨버린 사람만이 쉴 수 있는, 느리고 깊은 숨을 내쉬며 잠들어 있다. 사츠키의 걱정은 오롯이 그녀의 몫이다. 열 살의 사츠키는, 이미 기다림에 익숙한 아이였다.

그때, 아무런 예고도, 격식도 없이, 그것이 문득 그녀 곁에 나타난다. 언덕이 안개를 두르듯 털에 비를 머금은, 언덕만 한 생명체. 토토로는 말이 없다. 자신에 대해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는 언제나 그곳에 있었지만 이제 막 눈에 보이기 시작했을 뿐이라는 듯, 서두름 없는 위엄으로 논두렁가 어둠 속에 서 있다. 사츠키는 그를 올려다보았지만,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대신 우산을 건넨다.

토토로는 처음 선물을 받아보는 이처럼, 어설프면서도 반짝이는 호기심으로 우산을 받아 든다. 그리고 팽팽하게 펼쳐진 우산 위로 빗방울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며 펄쩍 뛰어오른다. 그 바람에 머리 위 나뭇가지에 맺혔던 물방울들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찬란한 폭포가 되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다. 그의 기쁨은 거대하고 또 단순하다. 그리고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두 손으로 가족의 희망을 붙들고 있던 사츠키가 웃는다.

장면의 전부는 이렇다. 비, 숨결, 그리고 기묘한 동행.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엄마는 여전히 병원에 있고 버스는 여전히 늦는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길이 더는 무섭게 텅 비어 있지 않다. 오히려 무언가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 주듯 비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삶의 의미가 진단, 말다툼, 모든 것이 뒤바뀐 순간 같은 거대한 사건들 속에 있다고 믿으며 자란다. 하지만 미야자키는 그보다 더 조용한 진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를 지탱해 주는 것은 그런 사건들 사이의 시간을 채우는 ‘함께 있음’이라는 것을. 정답을 알려주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곁에서 함께 비를 맞으며 빗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그런 존재 말이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세상이 베푸는 너그러움에 더는 마음을 열지 않게 된다. 세상이 너그러움을 거두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그저 우연, 혹은 날씨, 혹은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우리가 더는 주목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무들이 생기를 잃은 것은 아니었다. 더 좋은 우산을 쓰기 시작했다고 해서 비가 덜 경이로워진 것도 아니었다. 변한 것은, 무언가에 의해 기꺼이 걸음을 멈추려 하던 우리의 마음이었다. 어떤 소리, 그림자, 머리 위 나뭇가지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물줄기가, 길고 진지하기만 한 우리 삶의 운영을 잠시 멈추게 두려는 그런 마음 말이다.

사츠키가 비를 보고 웃는 이유는 곁에 있는 존재가 그것을 경이롭게 여기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구조도, 해결도 아닌, 그저 아직 세상사에 무감해지는 법을 배우지 않은 존재와의 동행 말이다.

버스 정류장은 여전히 그곳, 그 길 위, 그 빗속에 있다. 문제는 당신이, 단 한 번이라도 짊어진 짐을 내려놓고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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