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그녀는 조개껍데기 위에 서 있다. 한 손은 가슴을 가리기 위해 들어 올리고, 다른 한 손은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을 그러쥔다. 보티첼리는 그녀를 바로 그곳에 그렸다. 그녀 뒤에는 거품 이는 어두운 바다가, 앞에는 그녀를 기다리는 해안이 있는 두 세계 사이에 떠 있는 모습으로. 서풍의 신 제피로스는 한 님프와 뒤엉켜 있다. 그들의 몸은 하나의 힘을 이루어, 여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녀를 앞으로 밀어낸다. 해안에서는 호라이 여신이 꽃무늬 망토를 펼쳐 들고 있다. 그녀를 맞이하고, 옷을 입히고, 원초적인 세계에서 문명의 세계로 나아가는 그녀의 여정을 돕기 위해.
하지만 비너스, 그녀 자신은 홀로 그 중심에 서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는 공간이다. 바다도 아니고, 해안도 아닌, 그 사이의 떨리는 순간. 그녀는 폭력과 변신 속에서 막 태어났다. 크로노스가 자신의 아버지를 거세하고 그 신성한 잔해를 바다에 던져버린 사건으로부터. 그 대재앙 속에서 그녀, 아름다움 그 자체이자 사랑의 화신이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세상과 마주해야 한다.
그녀의 자세를 보라. 그녀는 찬란하다. 그렇다. 빛을 반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빛을 내는 듯 광채가 난다. 하지만 그녀는 또한 무언가로 자신을 가리려 하고 있다. 수치심 때문이 아니다. 이것은 숨으려는 몸짓이 아니다. 이것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섬세한 자각이다. 그녀는 자신의 힘과 연약함을 모두 알고 있다. 그녀는 신이지만, 또한 두려워하고 있다. 장엄하지만, 다음에 올 일에 대해서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녀 주위로 바람이 울부짖는다. 발밑의 조개껍데기는 흔들린다. 누군가 망토를 들고 기다린다. 하지만 이 정지된 찰나의 순간, 그녀는 바다에도, 육지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녀는 순수한 가능성 그 자체다. 통제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이곳으로 보내져, 온전히 현존하며, 온전히 무방비한 상태로, 자신이 다가가는 바로 그 해안을 성스러운 땅으로 변화시킨다.
성찰
우리는 한 번의 생에서 수없이 여러 번 태어난다. 그리고 각각의 탄생에는 저마다의 공포와, 저마다의 바람과, 저마다의 기다리는 해안이 따른다. 새 직장에서의 첫날, 화장실을 찾는 것조차 시험처럼 느껴지는 그런 날. 상실을 겪은 다음 날 아침, 이전에는 결코 되어 본 적 없는 누군가로 깨어나는 순간. 모든 것을 바꿀 진실을 말하기 직전의 그 순간.
비너스는 우리에게 바로 이런 순간들을 허락한다. 굳이 당당하게 해안으로 걸어 들어갈 필요는 없다. 준비가 되어 있을 필요도, 저편에서 어떤 사람이 될지 모두 알아낼 필요도 없다. 그저 도착하기만 하면 된다. 바람에 몸을 맡기고, 해안이 당신을 받아주리라, 또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들고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기만 하면 된다.
거품은 그 이전에 있었던 모든 것을 기억한다. 폭력, 변신, 그리고 어두운 바다를. 하지만 여신은 앞을 향한다. 과거의 자신도, 미래의 자신도 아닌, 그저 그 사이의 공간에서 무섭도록 생생하게 살아 있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평범한 삶에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과소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얼마나 자주 우리는 어떤 문턱 위에서 벌거벗은 채 서 있는가. 바람이 우리를 채찍질하는 동안, 수치심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인식하며 몸을 가린 채로. 문제는 우리가 다시 태어날 만큼 충분히 용감한가가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공간에 단 한 순간이라도 기꺼이 서서, 새로운 존재로 떠오르는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둘 수 있는가이다.